3장 5-6절

 35-6

כִּ֚י יֹדֵ֣עַ אֱלֹהִ֔ים כִּ֗י בְּיֹום֙ אֲכָלְכֶ֣ם מִמֶּ֔נּוּ וְנִפְקְח֖וּ עֵֽינֵיכֶ֑ם וִהְיִיתֶם֙ כֵּֽאלֹהִ֔ים יֹדְעֵ֖י טֹ֥וב וָרָֽע׃ וַתֵּ֣רֶא הָֽאִשָּׁ֡ה כִּ֣י טֹוב֩ הָעֵ֨ץ לְמַאֲכָ֜ל וְכִ֧י תַֽאֲוָה־ה֣וּא לָעֵינַ֗יִם וְנֶחְמָ֤ד הָעֵץ֙ לְהַשְׂכִּ֔יל וַתִּקַּ֥ח מִפִּרְיֹ֖ו וַתֹּאכַ֑ל וַתִּתֵּ֧ן גַּם־לְאִישָׁ֛הּ עִמָּ֖הּ וַיֹּאכַֽל׃

(이심이라) 요데아(알다) 엘로힘 키(~줄을) 베욤(날에는) 아콜레켐(너희가 ~먹는) 밈멘누(그것을) 웨니프케후(밝아) 에네켐(너희 눈이) 위호이템(되어) 케로힘(하나님과 같이) 요데에() 토브() 와라(악을) 와테레() 하이샤(여자가) () 토브(직도 하고) 하에츠(그 나무를) 레마아칼(먹음) 웨키(접속사) 타이봐흐(직도 하고) (그것이) 라메나힘(보암) 웨네호마드(탐스럽기도 한) 하에츠(나무인지라) 레하스킬(지혜롭게 할 만큼) 와티카흐(여자가 따) 밉피르요(그 열매를) 왓토칼(먹고) 왓티텐(주매) () 레이샤흐(남편에게) 임마흐(자기와 함께 한) 와요칼(그도 먹은지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개역개정)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것에 하나님과 같이 되는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수정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하나님은 『먹는 날에는 죽는다』라고 하셨지만, 사탄은 먹는 날에는 죽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자기의 관점이 생기는 것이다. 율법을 자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하나님처럼 선악을 판단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먹은 날이 언제인가? 이 날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날인가 아니면 이 땅에서의 날인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하나님이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는데, 만일 여섯째 날에 아담과 여자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면,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곱째 날이 지나서 그들이 먹었다면, 이는 하나님 나라의 에덴동산이 아닌 이 세상에서의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먹은 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통해서 어떤 인간사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일어난 일을 이 땅에서도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들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날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한다. 즉 흙 속에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흙속에서 태어난 인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죄를 범하면 죽는다 라는 것이다.『죽는다』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이 흙에 갇히는 것이고, 이 땅 에덴의 동산에서『죽는다』라는 것은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을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시지 않고, 창세기 2 1절에서『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고 대신 표현했다. 천지와 만물은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를 말한다.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로 재편성했다 라는 말이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의 일은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군대(천사)가 범죄하므로 이 땅에 흙으로 와서 인간이 되므로 그 속의 영들이 땅의 군대가 되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장 루시퍼가 천사들을 미혹하여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하늘의 영들이 이 땅에 갇혀 인간이 되었고, 이 땅에서의 에덴 동산에 있던 하와(그리스도의 지체)에게 뱀(사탄)이 접근하여 미혹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인간은 반복적으로 죄악에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고보서 1 14-15절에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먹는 날』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날 때 라는 말이다. 이『먹는 날』은 하나님 나라에서도 적용되고, 이 땅의 에덴동산에서도 적용되며, 이스라엘에게도 적용된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아서 율법을 잘 지켜서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그 날이 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자기가 스스로 선을 이루어 보겠다는 것이 먹는 날이 되는 것이다. 자기가 판단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먹는 날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35절에서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너희 눈이 밝아져 라는 말은『자기의 의』를 밝히는 눈이 될 것이다.『자기의 의』가 모든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자기의 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기의 의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율법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자기의 의다. 그래서 나무는 율법이요, 열매는 자기의 의라는 것이다.

3 3절에서는 하와가 뱀에게『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라고 말했다. 창세기 3 3절과 5절을 연결하면, 먹는 날에는 죽게 되며, 눈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죽는 것이 곧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이 곧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자기의 의를 세우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하고 자기의 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의 의에 빠진 자들이 된다. 이것을 사탄이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지혜로운 자라고 했다. 지혜롭다 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자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어도, 자기의 의를 내려놓지 않으면, 사탄을 따르는 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라는 말은 자기의 의를 말한다. 이것이 바로 육을 따르게 하는 옛사람의 정체다.

사탄은 영들에게 자기의 의를 먹고(가지도록 하고) 하나님 나라를 떠나서 세상에 가게 되면 자기의 의로 인해서 너희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신다 라고 미혹했다. 사탄이 영들에게 세상에 가면 자기의 의를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없이도 나만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고 미혹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었지만, 사탄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왕국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해서 일정기간 간섭을 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에서의 포악성에 대해서 심판도 하시고,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셔서, 너희들이 하는『자기의 의』는 죽는 것이라는 것을 모든 민족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까지 이 세상에 보내시어 죽게까지 해주셨는데도, 대부분 인간들(영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은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이다. 즉 그 열매를 먹은 자기도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관점만 찾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복음을 발견해야 하는데, 율법만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들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것으로 사탄이 미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노력한다.『자기의 의』가 기준이 되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24절에서 율법은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된다는 것인데, 율법에만 매여 있으면,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뱀은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장(루시퍼)이었는데, 타락하면 사탄()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의를 나타내면 아벨을 죽인 가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죽이는 바리새인들이 되는 것이다.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는 율법주의가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남을 비판하지 말라 라고 하신 의도도 바로 비판하는 자는 자기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기준으로 비판하는 자들은 결국 자기의 의가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들도 자기의 의를 대표하는 사탄을 섬긴다. 왜냐하면 사탄에 미혹되어서 이 땅에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신적인 존재가 되려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결국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 신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29절을 통해서 살펴보면,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하나인데,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듯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로 나누셨다. 겉으로 보기에 한 나무로 보이지만 생명 나무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열매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게 보이는 것이다. 이 표현은 창세기 3 6절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하다는 말은 요한1216절에서『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와 같은 이치이다. 관점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세상은 뱀을 상징하고 자기의 의가 되는 것이다. 자기의 의는 지식과 경험과 자기의 의지가 연합된 특성을 갖는다. 헬라어 에피튜미아이다. 야고보서 114절에서『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에피튜미아는 정욕, 욕망, 갈망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20 17절에서『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여기서『탐내지 말라』라는 표현이 『아름답게 보인다』라는 표현과 같은 것이다. 이 단어를 로마서 7 7절에서『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즉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보면 먹고 싶은(탐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라는 것이다.

『보암직도 하고』사탄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계속 보게하므로 하와가 스스로 판단하겠끔 유도하는 것이다.『지혜롭게 할 만큼』은『신중하게 생각하게 할만큼』이라는 뜻이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보니, 탐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어도 될 것이 느껴진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을 떠나도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겠다 라고 판단이 들어선 것이다. 비록 사탄이 하와를 미혹했지만, 하와가 스스로 판단해보니 자기 욕심이 생긴 것이다. 사도바울이 이 탐욕이 생긴 것을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영들이 욕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영들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므로 완전한 상태다. 그런데 스스로 완전해지겠다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완전하게 되겠다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열매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스스로 노력해서 하나님처럼 되게 노력하는 지식의 열매다. 정말 피조물이 보기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고 믿으므로 그들에게 율법은 정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열매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 자기의 의에 빠져버린 영들을 흙 속에 가두고 스스로 의롭게 되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마치 욥을 사탄에게 붙이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이 자기의 의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마찬가지로 영들도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하고 결국 자기의 의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열매를 먹은 후에 인간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된 것이다. 예수님이 이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이 되어보려고 예수를 죽였다. 그들은 가인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율법에 비추어서 자신이 죄를 짓는지 안짓는지 살펴보고 열심히 의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그러지 않는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들어오라고 하시는데, 십자가에서 멀리 쳐다만 보고 있는 형세다. 예수님과 새언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로 들어가야만 한다. 하나님 나라에는 오직 언약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다.

누가복음 22 20절에서『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는 자다. 로마서 63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세례는 새언약에 들어가는 의식이다. 예수와 합하여 세례받는 것은 결국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먹으면 죽는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는데, 하와는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여자가 열매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스스로 하나님 없이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표현이다.『남편에게도 주매』주매 라는 말은 『놓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1 17절에서『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여기서 궁창에『두어』가 바로『놓았다』라는 단어와 같은 것이다. 창세기 9 12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여기서『세우는』이라는 단어가『두다』라는 의미다. 창세기 15 10절에서『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여기서도 『놓고』가 바로『놓았다』라는 단어와 같다.  

『남편에게도 주매』라는 것은 과일 하나를 준다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하나님 나라의 지체를 의미한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지체들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겠다고 결심한 내용을 그리스도에게 고백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나를 통하여 천사들이 내려가고 나를 통하여 올라갈 것이라는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남편이 먹었다는 것은 이 약속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남편이 먹었으므로 죄의 몸으로 세상에 먼저 태어나서, 그 뒤에 오는 모든 영들의 몸을 만들어주고, 마지막 아담이 회개하는 모든 영들에게 영의 몸을 만들어주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사탄은 영들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지만 둘째 사망에서 건져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영들은 그 사실을 믿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런데, 아무나 데려가시지는 않는 것이다. 오직 새언약을 체결한 자만 데려가시겠다는 것이다. 처음에 발생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그 탐욕이 죽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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