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8-19절

 

18-19.

וְלִמְשֹׁל֙ בַּיֹּ֣ום וּבַלַּ֔יְלָה וּֽלֲהַבְדִּ֔יל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רְבִיעִֽי׃ פ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개역개정)


이 말씀은 14절의 전반부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라 같은 말을 계속 강조 반복하고 있다.16절에서는 큰 광명이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이 밤을 주관하게 했으므로, 주야 라는 말보다 낮과 밤으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큰 광명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작은 광명체는 율법을 상징한다. 작은 광명체를 통해서 큰 광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가라는 말씀이다. 빛이 비치고, 주관하게 하고, 나뉘게 하는 것이다. 어둠의 상태에서 빛을 만들고 비취게한다. 빛을 받는 자는 스스로 빛이 될 수는 없다.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다른 이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을 인간들에게 보내주신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직접 비춰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끝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 의를 이루어 보도록 했다. 의를 이룰 수 없으므로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죄인임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짐승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장차 영원한 희생제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스라엘 땅에 오셨으나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의미도 모르고 그리스도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왜 인간들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는가? 이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지어서 그 후손들이 죄인이 되었다는 말은 타당하지 못하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이 각각 자기의 죄를 가지고 영이 육체 속으로 들어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물론 부모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래서 육체를 가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부모로부터 유전되지만,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몫인 것이다. 죄성과 죄는 동일하다고 벌 수는 없지만, 죄성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죄성은 육체로 비롯된 마음이다.

인간 속에는 탐욕이라는 것이 있다. 이 탐욕이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것은 부모로부터 유전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의 영 속에 낙인 찍힌 것이다. 사탄의 자식이라는 증표(666)가 된다. 이것이 죄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이 사탄에 미혹되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탐욕을 가진 것이 죄의 근본인 것이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미혹당하여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으며,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근본인 원죄를 말할 때 우리는 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원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의 탐욕이다.

물질세계, 특히 육체 속에 갇힌 인간은 흑암에 있는 존재가 된다. 그들은 영적으로 눈먼 자이며, 귀머거리이며, 말못하는 벙어리인 것이다. 하나님이 작은 광명체인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셔서 깨닫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이방인들이 복음(큰 광명체)를 깨닫게 된 것이다. 물질세계에 갇힌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 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된다.

창세기 11절에서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물질세계(물덩어리)를 이끌어내셨다. 그리고 첫째 날, ()과 어둠()을 나누셨다. 둘째 날에는 물덩이를 위의 물과 아래 물로 나누고 그 가운데 궁창(공중)을 두게 했다. 셋째 날에는 아래 물을 육지와 바다로 나뉘게 했다. 그리고 넷째 날에는 궁창이라는 공중에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와 별을 두게 했다. 계속 나누고 있는 것이다. 첫째 날이 넷째 날과 연관되어 있고, 둘째 날이 다섯째 날과 셋째 날이 여섯째 날과 연관되어 진다. 즉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첫째 날,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넷째 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빛과 어둠을 계속 낮과 밤이라는 테마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낮은 빛에 있는 존재, 밤은 어둠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있는 존재들은 빛이고, 물질세계에 있는 존재들은 어두운 존재라는 것이다. 넷째 날부터는 땅(물질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넷째 날에는 절기가 생기고,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와 별이 나타난 것이다. 셋째 날까지는 하늘(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라면 넷째 날부터는 땅(물질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첫째 날 오르가 넷째 날 마오르가 되고 이 마오르가 등잔대로 표현되므로 성막에서 나타나고, 신약에서는 너희는 빛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절기로 말하자면 셋째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므로 초실절이지만, 넷째 날은 오순절이 된다. 오순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날이다. 신약에서는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핵심은 성령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언약으로 말하자면 선지자 모세와 관련이 있다.

선지자를 이렇게 비교하면, 첫째 날은 아담, 둘째날은 노아, 셋째 날은 아브라함이다. 그리고 넷째 날이 모세인 것이다. 참고로 다섯째 날은 다윗, 여섯째 날이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이다. 달은 작은 광명체는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해와 달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보여주고, 별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를 표현한다. 해와 달을 통해서 별이 되라는 것이다. 별은 100을 상징한다. 100은 아브라함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은 아브와 레헴(긍휼)의 합성어로 성전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품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아브라함의 품은 이런 의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부활하여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율법 따로 복음 따로가 아니라 함께 붙어있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되어있는데, 생명나무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넷째 날은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셋째 날은 삼일 길을 나타낸다. 삼일 길을 간 후에 드디어 넷째 날이 오는 것이다. 삼일만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넷째 날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광명체인 율법을 통해서 큰 광명체인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순정에 성령이 강림한 것 같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에게 성령이 심령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도가 곧 성전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걸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걸어가신 것과 같은 맥을 한다. 첫째 날이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둠에서 빛의 사역이 되어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부활장인데,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을 먼저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성도의 부활도 없다는 것이다. 부활을 위해서는 사전에 십자가의 죽음이 있다. 성도 역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둠에 있었던 자라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에서 죽은 저 예수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고 함께 죽은 자가 되라는 것이다. 어둠에 있었던 자라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날, 둘째 날, 셋째 날이 그리스도(신랑)의 사역이라면, 넷째날 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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